책 한누리

그리스인 조르바

cassia 2005. 4. 16. 04:57
이제 내일 아니 오늘이면 아테네 올림픽은 막을 내립니다.
이 올림픽 내내 선수들과, 관중들, 세계인들을 열광시켰던 한가운데에서
한숨과,환호를 담아내던 음악이 바로 조르바의 배경음악이어서인지
새삼 사람들은 '희랍인 조르바'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라는 나라. 지중해와 아름다운 섬들이 즐비한 나라.
그 나라와 어울리게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인생을 산다.
즐기기 위해 사는 사람. 조르바.

그렇게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할까.
우리의 환상속에서나 가능한 일은 아닐지.
더구나 조르바의 행동은 가끔 무책임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쾌락만을 추구하는 조르바의 모습에서 우리 사람들은
자기 안에 내재된 억눌린 욕망을 방출하는지도 모릅니다..

자유와 방종의 경계에서 위험한 춤을 추는 자유인 조르바,...

올림픽은 어쩌면
모든 속박으로 부터 자유를 쟁취하려는 조르바의 후예들이 펼치는
육체의 에너지를 최대한 분출해 내는 축제인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자유가 아니고 자유를 위한 싸움이다!

옛날에 읽었던 책을 찾아보면서 책 이미지를 검색해 봅니다..
새로 번역되어 나온 책이 여러 권 있네요..
그 중 제가 좋아하는 이윤기님의 번역서를 소개합니다..

덧붙여서 장황한대로 떠?돌아 다니는 조르바(서평 및 감상)를 건져 올려 보았습니다..
이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조르바를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온통 장미꽃 한가지 뿐이라면 장미가 아름다울까요?
세상모르는 뎀의 생각하나입니다...ㅎㅎㅎ.- 뎀 -


그리스인 조르바  
저자 : 니코스 카잔차키스 역자 : 이윤기 출판사 : 열린책들 




지은이 소개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 1885∼1957) -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5년 크레타 섬 헤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아테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박사과정 중 희곡 「동이 트면」과 「뱀과 백합」을 발표해
그리스 문학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후 파리로 유학해, 프랑스 대학과 소르본느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동안 니체와 베르그송에 심취하여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들이 깊이 천착했다.
1909년에는 단막극 「코미디」를 발표했고,
톨스토이의 사상과 작품에 열중하기도 했다.
1938년과 1942년에는 「오딧세이아」 「희랍인조르바」를 발표하여
그리스 문단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문명을 얻게 되었다.
1957년 작품 「동족상잔」을 끝으로 그의 다양한 문학활동이 막을 내렸다.
문명세계의 톱니바퀴 같은 삶에 빠지지 않은 생동적인 인간을 즐겨 그린
그의 작품들은 금서목록에 오르기도 했으나,
순수성을 희구하는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카잔차키스의 대표 장편.
항구도시 피라에우스를 무대로 야생마같은 조르바의 삶을 그린 장편이다.
조르바는 물레 돌리는데 방해가 된다며 자기 손가락을 자르고,
수도승을 꼬여 수도원에 불을 지르게 하는 등 자유로운 인간의 전형.


* 중요한 건 자유가 아니고 자유 위한 싸움 / 김선우시인

나는 조르바를 사랑한다.
그는 육체의 즐거움을 정신의 즐거움으로 도약시킬 줄 아는 놀라운 마법을 지녔다.
이성과 교육으로부터 어떤 수혜도 받지 않은 이 늙은 노동자는
일상적인 남자·여자·꽃 핀 나무·냉수 한 컵·빵 한 조각도
처음 보는 경이로운 수수께끼처럼 열정적으로 바라보고 만지고 냄새 맡는다.

조르바를 거치면 일상의 모든 것이 신성한 야만으로 돌아간다.
“당신이 바라는 만큼 일해 주겠소. 거기 가면 나는 당신 사람이니까.
하지만 산투리(그리스의 현악기) 말인데, 그건 달라요.

산투리는 짐승이요.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
춤도 출 수 있소. 그러나 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오.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냐고? 단호하게, 조르바는 말한다.

“자유라는 거지!”

뜨겁고 치열하게 생에 밀착해 있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자유.
생의 가장 밑자리까지 질주함으로써 생을 정복하는 조르바의 자유를 나는 사랑한다.
춤추고 싸우고 일하고 산투리를 연주하는,
곡괭이와 산투리를 함께 다룰 수 있는 손을 가진 조르바는
`야성의 영혼을 가진,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영혼의 자서전>에서 카잔차키스는 고백한다.
“내 영혼에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을 대라면 호메로스와
부처와 니체와 베르그송과 조르바를 꼽으리라. …
조르바는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생명에의, 불사(不死)를 향한 힘의 흐름과 파괴에의,
죽음을 향한 힘의 흐름을 한 몸 속에 넣고
너무도 유쾌하게 생을 가로지르는 조르바.

긍지에 찬 모습으로 백정의 춤과 전사의 춤을 추고 있는 조르바.
카잔차키스의 영혼은 `춤추며 싸우는' 조르바를 만나면서
근육질과 뜨거운 피가 가득 찬 심연을 얻었으며,
그 육체성의 뻘 속에서 빛나는 마법의 시간이 무르익는다.

자기 내부에 존재하면서도 자기를 초월해 있는 것을 구하기 위해
평생을 싸웠던 작가 카잔차키스는 <돌의 정원>에서 이렇게 쓴다.
“…그리고 우리 식물과 동물과 인간은, 혼례의 행렬에 들어있는 우리는,
신비스러운 침실을 향해 전율하며 돌진하는 것이다.
우리 하나하나가 혼례의 성스러운 상징을 가지고 간다.”
영원한 청년이며 혼례의 신랑인 조르바가 못 박히고 일그러진 손으로
꽃 한 송이를 만지듯 섬세하게 산투리의 줄을 고르는 것을 나는 바라본다.
그리고 듣는다.
날마다 죽으라.
날마다 태어나라.

중요한 것은 자유가 아니고 자유를 위한 싸움이다!


* 야생마같은 자유인 묘사

노벨 문학상 후보에 2번이나 오르며 그리스 문학을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그리스 인 조르바'가 이윤기씨의 번역으로 재출간됐다.

이 책의 주인공 조르바는 실제인물.
그는 물레를 돌리는데 거추장스럽다 하여 제 손가락을 잘라 낸다거나.
여성의 치모를 모아 베개를 만들어 베고 자는 등 기괴하고 상식을 뛰어넘는 야생마같은 자유인.

니체, 제르그송, 불교 등에서 큰 영향을 받은 카잔차키스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소설은 현대인에게 큰 해방의 미덕을 전해준다.

무엇보다도 주인공 조르바의 자유로운 정신세계가
너무나 매력적이라 읽을 때마다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늘 이성적이고 주위를 의식하는 작중 화자인
‘나’처럼 나 역시 일탈을 모르는 삶을 살아왔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지중해의
크레타섬에서 1888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그리스인 작가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2차례 올랐으나 상은 못받은 사람이다.
그가 태어난 크레타섬은 그리스신화의 본거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각종 신전이 많고,
또 예전부터 해적들이 들끓었고, 그가 태어나 자란 당시에는
터키의 지배를 받고 있어서 항상 유혈충돌이 있던 어지러운 세상이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실존의 인물인 조르바라는 사람을 만나
크레타섬에서 갈탄을 캐는 탄광사업을 한다.
그리고 결국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자금을 대고 조르바가 작업을 맡아하던
사업은 망하고 둘은 헤어지며,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와의 만남을 통해 나눈 대화를 정리하고자 이 책을 썼다.

작가는
‘나는 염소인가보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자꾸만 책이 읽고 싶다’고 한다.
그러자 조르바는
‘책을 모아놓고 불이나 질러 버리라고 한다. 그러면 자유를 얻으리라’고 하면서…
이 말에 작가는 감명을 받는다. 자유! 이것이 이 책의 주제이고,
작가가 평생동안 찾아다닌 끊임없는 주제이다.

내가 보기에 조르바는 조금 특이한, 그러나 난봉꾼인 행동주의자이고,
작가는 책상물림에 불과한 사람이다.
별로 감명을 받을 ‘거리’가 없는데 감명을 받는다. 예를 들어,
‘사람은 왜 태어나고 죽는가? 당신이 읽은 책속에 그 답이 있지 않았느냐?’고 묻자
작가는 절망한다.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에 대한 답변도 얻지 못함을 알고는
자기의 공부가 헛되었음을 깨닫고 불안함을 느낀다.
그다지 감명스럽지도 않은 질문이며,
또 작가가 성경을 한 번이라도 겸허한 마음으로 읽었다면 다 알 수 있는 질문이다.


* Zorba The Greek  

저자 카잔차키스가, 자기 삶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으로 마지막으로 꼽는 인물 조르바.
야생마 같은 주인공 조르바는 실제 인물이다.

정신과 육신.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
영혼과 육체.

유일무이 진정한 자유인 조르바가 던져주는 메시지가 가득한 책이다.

“도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하기보다 무차별로 인간의 한계를 깨부시는 무지막지한 사나이다.

조르바의 유언中"아, 나 같은 사람은 천년은 살아야 하는건데..."

독자의 답답한 마음을 조르바는 제발 자유롭게 살라고 죽을 때까지 후려친다.

* 행복한 자유와 방종의 경계에서 

「두목, 그저께 우리 무슨 이야기를 했지요? 맞아요, 그얘기를 했지요.
그러니까 아나그노스티 영감을 위해, 그 영감을 눈이나 뜨게 하지 그러시오?
그 영감 마누라가 영감 앞에서 하는 짓 봤지요?
구걸하는 개처럼 얌전하게 명령을 기다리고 서 있는 꼴? 가서 가르쳐 주시지 그러시오.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다, 불알까인 돼지가 소리를 지르며 길길이 뛰고 있는 앞에서
불알을 술안주 삼는 건 잔인하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데
굶어 죽으면서 하느님께 감사하는 건 미친짓이다, 이렇게 말이요.
당신의 그 엉터리없는 설교를 들어서 저 불쌍한 악마 아나그노스티에게
득될 게 뭐있겠어요? 귀찮게 할 뿐이에요. 아나그노스티 할마시는 어떻고요?
괜히 기름더미를 불에다 던지는 격이지요. 부부싸움이 벌어지고,
암탉은 외람되이 수탉 노릇하려 들 거고, 한바탕 붙어 털 깨나 날겠지요!
두목, 사람들 좀 그대로 놔둬요. 그 사람들 눈뜨게 해주려고 하지 말아요!
그래, 띄워 놓았다고 칩시다. 뭘 보겠어요? 비참해요!
두목, 눈감은 놈은 감은 대로 놔둬요. 꿈꾸게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그는 말하다 말고 머리를 긁었다. 생각이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
「만일에....만일에 말이지요.....」
「만일이라니, 뭐요? 들어봅시다!」
「만의 하나, 그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지금의 암흑 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다면......보여줄 수 있어요?」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타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 지, 그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생각했다.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낡은 세계는 확실하고 구체적이다.
우리는 그 세계를 살며 순간순간 그 세계와 싸운다.
그 세계는 존재한다. 미래의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
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이 짜낸 빛의 천이다.
보랏빛 바람(사랑, 증오, 상상력, 행운, 하나님)에 둘러싸인 구름.....
이 땅의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라도 이제는 암호 이상의 예언을 들려 줄 수 없다.
암호가 모호할 수록 선지자는 위대한 것이다.
조르바가 비웃음을 띈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 골이났다.
「있어요. 나는 보다 나은 세계를 줄 수 있어요!」
내가 대답했다.
「있어요? 어디 좀 들어봅시다!」
「설명할 수 없어요. 설명해 봐야, 조르바, 당신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보여 줄게 없으니까 그러는 거지! 젊은 두목, 날 돌대가리로 보지 마쇼.
누가 당신에게 날 타고난 멍청이라고 했다면 그건 아주 잘못된 거요.
나도 아나그노스티 영감보다 더 배운 건 없지만 어디로 보나 영감처럼 멍청한 건 아니랍니다.
그래,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당신이 그 멍청이와 돌대가리 여편네에게
기대하는 건 뭔가요? 이 세상의 수많은 아나그노스티는 또 어떻게 하고?
당신에게 있는 건, 그들에게 보여 줄 것이 기껏해야 그것뿐이라는 말인가요?
그 사람들, 지금까지 잘 들 사랑왔어요. 새끼 낳고, 손자도 보고,
하느님이 그 자들을 귀머거리나 장님으로 만들어도 '하느님을 찬양하리로다'
어쩌고 합니다. 그자들은 그대로 편한 거예요.
그대로 놔두고 아무 소리 하지 말아요.」

*.*.*.*.*.*.*.*.*.*.*.*.*.*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시간이 있을 때마다 머릿속에 맴맴도는 문제지만
실로 만만치 않은 문제다.
난 지금도 내가 뭘 미치도록 좋아하는지 뭘 정말로 잘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조금 할 줄 아는 것이 몇가지 있고
그래서 그것을 조금 더 잘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을 뿐이다.
여지껏 열심히는 살았지만 항상 만족감보다는 왠지 이건 아닌데...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다가 요즘 시간을 갖고 진정한 나를 찾고 있지만 크게 진전이 없다.

이 책속에 나오는 알렉시스 조르바는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
가진 것도 없고 배움도 없지만 흥에 겨워 산투리를 연주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유쾌하다.
책 갖고 책상머리에 앉아서 인생을 고민하는 것을 쓸데없는 일이라고 여기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줄 알고 또 그것을 마음껏 즐기는 조르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도 있고 항상 자신만만하고
삶을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어서 완벽한 자유를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면서 사는 듯 하다.
일을 할때도 여자를 만날때도 항상 최선을 다해 몰두하는 조르바
물론 공금으로 딴짓도 하고 여자를 향해서 엉뚱한 일도 벌이고
수도원에서는 당당하지 못한 일도 하지만 매사에 자신의 믿음과 확신에 찬 행동에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하느님은 악마 대장보다 반거충이 악마를 더 미워하십니다"라며
말도 일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을 못 참는다.

조국을 위해 싸워본 적이 있냐는 말에 조르바는 이렇게 대답한다.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 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라고. 이라크전의 실상을 중계방송 보듯이 접하면서 인간존엄을 위협받고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요즘 가슴깊이 새겨야 할 것 같다.

나를 찾는데 작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행동으로 옮기기 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

* 조금은 불편한 시선.  

그리스인 조르바, 카잔차키스는 자유를 갈망했다지만
그 염원이 커져 방종으로 기울고 있는 건 아닌지.
산다는 것 자체를 너무나 즐기는 것으로
지우쳐있는 것 같아 읽는다는 게 좀 힘이 들었다.
아마도 타자는 모두 나의 쾌락을 위한 도구이며
현재 역시 쾌락을 욕망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삶이라는 삶의 철학.

글쎄, 자유분방과 호색한 것은 그렇다쳐도
그 기괴한 행위들은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가 너무 관리화된 질서에 잘 적응하며 살고 있는 탓인지,
혹은 절제화된 욕망이 습관화되어 결국 난쟁이가 되어버린 탓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의 삶이 자유로와 보이고 영혼마저도 바람결처럼 황홀할 정도로 자유로운 건
분명 내가 욕망하는 삶이지만, 삶의 전체를 그렇게 메꾸어 간다면
과연 마지막의 종결점이나 삶의 결과는 어떻게 설명될 것인가.
즐겁게 읽었고 쉬지 않고 읽어내리긴 했으나
즐거움과 내 가슴이 받아들인 것은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다.

* 매력적인 조르바~ ^0^  

처음엔 여성을 약간 무시하는 그이의 말투!!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여성을 정말 필요로하고 같이 행복하려고 하는 어떤걸 느끼게 되더라구요!!
이미 삶을 통해 지혜를 얻은 멋진 조르바를 만날 수 있답니다!!
그리고 저또한 저렇게 살아보고픈 욕망을 느끼게 하죠!!

* 생각에 갇힌 당신에게 권하는 이 글  

* 이 책은 문학이 아니라 언어의 아름다움이다.  

형식과 도덕률의 허구를 벗어난

시대의 반항아 조르바 / 2004/08/29 0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