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의 시배달 / 이창기, 「心境(심경)12-
이창기 ┃ 「心境(심경)12- 허수아비」을 배달하며
그를 보았습니다. 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스치듯 바라본 모습이지만 늘 입던 잠바와 자주 쓰던 색 바랜 모자, 그가 분명합니다. 몇 해 전 화투놀이 끝에 사이가 요원해진 친구. 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반가움은 이 서먹하고 먼 마음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버스를 멈춰 세웁니다. 서둘러 내립니다. 조금 전 지나온 길을 되돌아 밭고랑 사이를 건너 친구에게 향합니다.
이 순간 작품 속 인물에게는 무슨 생각들이 스쳐 지났을까요. 어떤 말들을 내려 앉혔다가 다시 날려보냈을까요.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이냐고 운을 뗄까요? 오래 전 격조했던 일을 두고 사과를 할까요. 아니면 이 사람아 왜 이런 땡볕에 일을 하냐고 걱정어린 핀잔부터 꺼낼까요. 드디어 수그리고 있던 친구가 저 앞에 있습니다. “어이 신씨”하고 친구를 부릅니다. 반갑게 부릅니다.
문학집배원 / 시인 박준
작가 : 이창기
출전 :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문학과지성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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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학광장 2021.11.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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