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사랑

문순화 작가의 한국의 야생화 기행(13) |새끼노루귀

cassia 2015. 4. 2. 20:12


눈·얼음 뚫고 나오는 ‘파설초’‘봄의 전령’ 역할 다해
꽃잎 털모습 뒤로 말려 영락없이 새끼노루귀 닮아

2월호에 실린 ‘너도바람꽃’에 이어 ‘새끼노루귀’도 봄의 전령이다. 새끼노루귀의 꽃말은 믿음 또는 인내.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꿋꿋이 꽃을 피워 내는 그 인내심에서 나왔다. 그래서 그를 눈과 얼음을 뚫고 나오는 풀이라 하여 파설초(破雪草) 또는 설할초(雪割草)라고도 부른다. 한약에서는 노루귀라고 해서 장이세신(獐耳細辛)이라 칭한다.

새끼노루귀라는 이름은 꽃잎의 털모습에서 유래했다. 꽃자루 끝에는 꽃이 하나씩 달려 있다. 꽃을 한참 피울 때쯤이면 잎이 뚜렷이 세 갈래로 갈라진다. 잎 뒷면도 꽃자루처럼 털이 많아지면서 조금 뒤로 말려 있는 모습이 새끼노루의 귀를 닮았다.

새끼노루귀를 문순화 사진작가가 처음 본 건 지금부터 무려 40년 전인 1975년. 제주도 한라산을 올라갔다 산굼부리 분화구로 내려오다 주차장 바로 밑 계곡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엔 야생화에 관심만 있고, 새끼노루귀와 노루귀를 구분 못 할 때였다. 필름에만 고이 담아 간직하고 그냥 넘어갔다.

20년이 흐른 뒤 1995년 고 이영노 박사는 식물도감을 만들면서 문 작가에게 “이 야생화를 본 적 있느냐?” 물었다. 옛날 기억을 더듬어 필름을 찾아 보여 줬다. 이 박사는 “이것을 어디서 찍었느냐? 그 위치에 다시 가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1910년대 일본의 나카이(Nakai) 박사가 제주도에서 처음 발견한 기록을 보여 줬다. ‘새끼노루귀는 잎과 꽃이 동시에 피며, 꽃받침잎이 5개로 길이가 9~10㎜다. 분포지는 제주도와 다도해.’

문 작가는 이 박사와 함께 즉시 제주도로 내려가 처음 본 그 장소로 갔다. 다행히 20여 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도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채 자생군락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박사는 새끼노루귀는 잎에 흰 얼룩이 있는 반면 노루귀는 얼룩이 없는 특징을 보인다고 두 야생화의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해 줬다. 이어 “제주도를 비롯한 남쪽 섬에서만 자생한다”고 주장했다. 이 박사는 그가 펴낸 한국동식물도감(1976년)에 제주도에 분포한다고 한정했다.

문 작가는 제주도에 벌초하러 갔다가 처음 본 지점 외의 다른 지점에서 또 발견했다. 산의 한쪽 돌담 사이에 자생하고 있었다. 몇 번을 목격한 문 작가는 노루귀와 새끼노루귀의 차이에 대해서 명확히 알게 됐다.

나카이와 이영노 박사의 식물도감은 자생지를 제주도라고 한정했고, 1996년에 나온 정태현의 한국식물도감에서는 전남을 추가했지만 문 작가는 거제도에서 직접 목격하기에 이른다. 거문도·보길도·진도 등지에서도 서식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뒤이어 서해안의 충남·경기도 연안까지 올라온 새끼노루귀를 렌즈에 담았다. 충남 대천 앞바다의 섬과 경기도 안성 앞바다의 섬에서 자생하는 새끼노루귀를 눈으로 두 번이나 확인했다.

특히 경기도 안성 앞바다 외딴 섬에서는 15년 전에 이미 발견했다. 혼자만 알고 있다가 작년에 또 갔더니 역시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얼마나 반가운지! 그곳에서는 형형색색이 뽐내고 있는 듯했다. 문 작가는 “야생화가 그렇게만 보존된다면 얼마나 좋으련만…”하고 당시 분위기와 기분을 전했다. 이어 “이제는 식물도감의 새끼노루귀 자생지역을 수정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주도와 남해안 지방이 아닌 이미 경기도 연안까지 올라온 상태라는 것이다.

새끼노루귀는 2월이면 꽃이 올라오기 시작해서 3월이면 절정을 이룬다. 키는 커봐야 7cm를 넘지 않는다. 새끼노루귀는 이렇게 꽃잎이 퇴화할 정도로 꽃을 급하게 피운다. 다 이유가 있다. 활엽수가 사는 숲속에 서식하기 때문에 나무에 잎이 돋기 시작하면 광합성작용을 못 한다. 이른 봄 일찍 꽃을 피우고 숲 속의 나무가 잎을 만들기 전에 꽃가루받이(수분) 끝내야 한다. 그래야 여러해살이풀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노루귀속은 전 세계 7종밖에 안 되는 작은 속이다. 우리나라에는 울릉도 특산인 섬노루귀를 포함해 3종이 분포한다.

새끼노루귀의 잎은 나물로 무쳐먹는다고 한다. 잎에는 쓴맛이 있고 뿌리에는 독성이 있다. 한약명 장이세신(獐耳細辛)이라고 붙은 이유다. 한방에서는 두통과 장 질환의 약용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또 폐결핵, 기침, 류머티즘 등의 약재로 사용한다.

 
1991년 4월 제주도에서 발견한 새끼노루귀가 하얀 꽃을 피워 봄소식을 전하고 있다.

꽃명 | 새끼노루귀
학명 | Hepatica insularis.
식물계(Plantae)
피자식물문(Angiospermaea)
쌍떡잎식물강(Dicotyledoneae)
미나리아재비과.
문순화 생태사진가
문순화(82세) 원로 생태사진가는 2012년 13만여 장의 야생화 사진을 정부에 기증했다.

평생에 걸친 과업이었기에 쉽지 않은 결단이었지만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나누고픈 마음이 나를 흔들림 없이 이끌었다”고 한다.

이 사진을 바탕으로 본지는 환경부와 문순화 선생의 도움으로 ‘한국의 야생화’ 연재를 시작한다.

 



출처 : 월간산 2015년 04월호
글·박정원 부장대우
사진·문순화 생태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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