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영화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라 -파울 클레 ‘인형극장(Puppet theater)’

cassia 2015. 5. 26. 03:45

[이야기가 있는 그림]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라 -파울 클레 ‘인형극장(Puppet theater)’

 

파울 클레, <인형극장>, 1923, 수채, 51.4x37.2cm.

 

아들 위해 만든 무대를
다시 그림으로 옮긴 작품
생동감 넘치는 색채 돋보여

 

“그림은 재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보게 하는 것
단순함은 상상력의 결과물”

 

알록달록한 색감, 유머러스한 배치, 이 그림은 어린이가 그린 것일까? 어른이 그린 것일까? 언뜻 봐서 아이 그림 같기도 하고, 어른이 장난삼아 그린 것도 같다. 그런데 이 그림이 대가의 작품이라고 하니 내색도 못하겠고 속으로만 “이런 그림은 나도 그리겠는 걸?”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아이 그림과 아이 같은 그림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이의 그림이 느낀 그대로를 표현했다면 아이 같은 그림은 대가의 상상력이 정화에 정화를 거듭해서 나온 결과이다. 고뇌의 과정을 거쳐 함축적이고 단순해진 그림, 스위스 추상화가 파울 클레(1879~1940)의 ‘인형극장’이다. 

 

검은 색 무대 위 다양한 색감에서 뭔지 모를 재미난 스토리가 연상된다. 꼬불꼬불한 머리에 하트 모양의 상체, 발아래 있는 꽃, 당나귀로 보이는 동물과 작은 인형, 해와 달, 집과 그림자가 색동으로 표현돼 있다. 원근법과 상관없는 구성 때문에 더더욱 아이의 천진함이 묻어난다. 동심 가득한 이 그림은 클레가 아들 펠릭스를 위해 만든 인형극 무대를 다시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단순한 선과 두드러지는 색채, 인형의 표정과 배경에서 호기심이 발동한다. 대체 어떤 내용의 인형극일까?

 

클레는 부모님이 모두 음악을 전공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 역시 ‘음악가가 될까? 화가가 될까?’를 고민할 정도로 바이올린에 출중한 재능을 보였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음악이 하나의 열쇠가 된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리드미컬한 구성과 생동감 넘치는 색채로 채워진 클레 작품은 대부분 50cm 정도로 크기가 작은 것도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압도적인 크기의 작품에서 느낄 수 없는 친밀한 감동이 있다.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클레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이 그림을 다시 한 번 보자. 그림 안에 감춰진 인형극의 스토리, 율동감, 아이의 천진난만함이 전해지지 않는가?

 

음악적 리듬감과 신비로운 색채, 과감하고 단순한 구조로 색다른 세계를 보여준 클레는 미학, 식물학, 천문학, 과학, 종교 등 다방면에 박식해 예술학교 바우하우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순수하게 느끼는 힘은 약해지는 법인데 이렇게 유머러스한 동심을 그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까?

 

어릴 때부터 대가 못지않은 그림을 그렸던 피카소는 “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알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했고, 조각가 브랑쿠시는 “사람이 동심을 잃어버리면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이 아이의 상상력을 동경했는지 모른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은 저절로 되지만 단순화하는 것은 생각의 정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찾는 것보다 이제껏 보았던 것을 잊어버리기가 더 힘들다”고 한 세잔의 말에 크게 공감하게 된다.

 

클레 외에도 장 뒤뷔페, 가스통 샤이삭, 바스키아, 미로 등 아이 같은 그림을 그린 대가들은 많다. 낙서 같기도 하고, 그리다 만 것 같기도 한 그들의 단순한 그림 앞에서 우리는 작품의 기에 눌리기보다 마음을 내려놓고 즐기게 된다. 보고 느낀 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리는 아이의 그림, 아이 같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대가들. 유치함과 정교함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작품 ‘인형극’ 앞에서 미소를 띠는 것은 누구나 ‘어린 시절’이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 아닐까? / 이지현 문화칼럼니스트


출처 / 한국교직원신문 2015-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