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이강산, 「젓가락」(낭송 노계현)

cassia 2015. 4. 7. 03:54

이강산, 「젓가락」(낭송 노계현)

 

 

 

이강산, 「젓가락」


남산골 황태탕 밥상이 넓고 길다

 

하룻밤 묵겠다고 작정한 순천 사람은 밥상 대각선, 내 앞의 묵사발까지 젓가락질을 한다
팔이 짧아 그예 접힌 무릎을 펴고야 만다

 

아하, 바라보자니 젓가락도 엉덩이 들고 무릎뼈까지 펴는 것이다

 

오늘밤 젓가락이 왕복한 대각선이란 순천에서 서울을 터
풍찬 노숙으로 서너 번쯤 척추가 접혔을 터

 

저 늙은 육신이 짐승이며 풀이며 매운 놈 뜨거운 놈 껴안고 내치는 것이니
아예 무릎 펴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무릎 꺾이면 마지막인 줄 꿰뚫고 있는지 모른다

 

시_ 이강산 - 이강산(1959~ )은 충남 금산에서 태어났다. 19890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 『모항』 등이 있다.

낭송_ 노계현 - 성우. 외화 '구름 속의 산책' '보통사람들' 등 다수 출연.
출전_ 모항 『모항』(실천문학사)
음악_ 권재욱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김태형


이강산, 「젓가락」을 배달하며

 

이강산 시집의 시들은 질박합니다. 제가 겪은 것들, 먹고 마시며 몸 부리고 산 이상의 것들을 쓰지 않기 때문이겠죠. 이로써 삶과 시가 정직함 안에서 깊이 내통하는 바가 분명합니다. 굽은 데 없이 펴진 젓가락과, 밥상에서 먼 자리에 있는 반찬을 집으려고 접힌 무릎을 일자로 펴는 누군가의 고단한 삶을 겹쳐보는 시인의 눈길이 그윽합니다. 상고 시대부터 가난의 습속(習俗)을 품고 시난고난 하는 날들을 견뎌온 이들은 무릎 꺾이면 그게 마지막이라는 걸 단박에 꿰어 아는 거지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 별뜨락새벽산책 시&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