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국, 「먼지의 밀도」(낭송 한용국)
한용국, 「먼지의 밀도」
그의 가방에는 구름이 가득 차 있다.
그가 평생 벌어 온 것은 먼지였을 뿐
한낱 먼지들을 모으기 위해서 그의
운동화는 그렇게 낡아 왔다.
그의 운동화 끝에 앉은 표범은
발톱과 근육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기억이란 쓸모없는 것, 어떤 기억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먼지들도
나름대로 밀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는 가끔 가방에 귀를 기울인다.
텅 빈 중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세월은 여백에도 흐름을 부여하는 법
밀리고 밀려와 닿은 곳에서야
귀는 예민하게 구름 쪽으로 뻗는다.
공개적으로 그는 구름을 호명해 본다.
그러자 물방울무늬 가득 밤이 와서
그에게 뿌리내린다. 가야 할 곳이 있다는 듯
벤치 위에 조용히 가방을 베고 몸을 눕힌다.
먼지로 가득 찬 가방이 서서히 부풀어 오른다.
◈ 시·낭송_ 한용국 - 한용국(1971~ )은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났다. 2003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하고, 시집으로 『그의 가방에는 구름이 가득 차 있다』가 있다.
◈ 출전_ ☜『그의 가방에는 구름이 가득 차 있다』(천년의시작)
◈ 음악_ 배기수
◈ 애니메이션_ 제이
◈ 프로듀서_ 김태형
한용국, 「먼지의 밀도」를 배달하며
평생 벌어온 것이 먼지뿐이라니요! 기억이란 쓸모없는 것이라니요! 겨우 마흔 중반에 이른 시인이 이렇듯 삶을 부정하고 있네요. 이게 다 내면 에너지가 바닥났기 때문이겠지요. 이런 상태를 심리학에서는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라고 하지요. 기력을 다 소진하고 심한 피로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무기력증과 자기혐오에서 허우적인다지요. 시인은 운동화에 그려진 표범이 발톱과 근육을 잃은 지 오래라고 썼는데, 실은 제 내면의 원시적 힘이 사라지고 없는 것을 에둘러 말하는 것이지요. 먼지로 가득 찬 가방을 끌어안고 헤매는 그의 모습이 안쓰럽고 애잔합니다. 그에게도 이런 고갈과 탈진의 날들을 발판 삼아 힘차게 도약할 수 있는 날들이 올까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 바람과 별이 쉬어가는 뜨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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