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정희성,「누가 기뻐서 시를 쓰랴」(낭송 송바울)

cassia 2014. 5. 20. 04:43

    정희성,「누가 기뻐서 시를 쓰랴」(낭송 송바울)
     

     

     

    정희성, 「누가 기뻐서 시를 쓰랴」


    꽃이 마구 피었다 지니까
    심란해서 어디 가 조용히
    혼자 좀 있다 오고 싶어서
    배낭 메고 나서는데 집사람이
    어디 가느냐고
    생태학교에 간다고
    생태는 무슨 생태?
    늙은이는 어디 가지도 말고
    그냥 들어앉아 있는 게 생태라고
    꽃이 마구 피었다 지니까
    심란해서 그러는지는 모르고
    봄이 영영 올 것 같지 않아
    그런다고는 못하고

     

    시_ 정희성 - 1945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다.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변신變身」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 답청踏靑』,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시를 찾아서』, 『돌아다보면 문득』, 『그리운나무』 등이 있다.

    낭송_ 송바울 - 배우. '세일즈맨의 죽음', '독짓는 늙은이' 등에 출연. 극단 '은행나무' 대표.
    출전_ 그리운 나무 『그리운 나무』(창비)
    음악_ 권재욱
    애니메이션_ 제이
    프로듀서_ 김태형


    정희성, 「누가 기뻐서 시를 쓰랴」를 배달하며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한 대목의 일상입니다. 봄날은 만물이 솟으니까 우리 몸도 솟습니다. 나이가 어떻든 그렇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은 더욱 반짝이지만 노년의 웃음도 모처럼 윤이 납니다. 그리하여 어디 가서 몸도 마음도 다스려보고자 합니다. 봄 꽃, 봄바람으로 씻어보고자 몰래 나서봅니다. 어디 모퉁이에서 지나가는 ‘종아리’라도 훔쳐보고 해야 합니다. 그건 시심(詩心)입니다. 누구나 있는 시심입니다. 배낭 매고 나서는 마나님은 속도 모르고 근심합니다. 즐거운 ‘심란’을 근심합니다. 이러한 심란도 그러나 더 나이가 차면 오지 않을지 모릅니다.  ‘봄이 영영 올 것 같지 않아’ 그런다고 말하지 못하고 곤란합니다. 시인이라 그런다고 말하지 못하고 곤란합니다. 허나 독자는 즐겁습니다.

     

    문학집배원 장석남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