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안현미, 「개기월식」(낭송 안현미)

cassia 2014. 3. 11. 06:47

    안현미, 「개기월식」(낭송 안현미)

     

     

     

    안현미, 「개기월식」

     

    사내의 그림자 속에 여자는 서 있다 여자의 울음은 누군가의 고독을 적어놓은 파피루스에 덧쓰는 밀서 같은 것이어서 그것이 울음인지 밀서인지 고독인지 파아졸라의 음악처럼 외로운 것인지 산사나무 꽃그늘처럼 슬픈 것인지 아무것도 아닌 것인지 그게 다인지 여자는 눈, 코, 입이 다 사라진 사내의 그림자 속에서 사과를 베어 먹듯 사랑을 사랑이라고만 말하자, 고 중얼거리며 사내의 눈, 코, 입을 다 베어 먹고 마침내는 그림자까지 알뜰하게 다 베어 먹고 유쾌하게 사과의 검은 씨를 뱉듯 사내를 뱉는다

     

    시·낭송_ 안현미 – 1972년 강원도 태백 출생. 2001년 《문학동네》로 등단. 시집으로 『곰곰』, 『이별의 재구성』이 있음.

    출전_ 곰곰 『곰곰』(문예중앙)
    음악_ 권재욱
    애니메이션_ 민경
    프로듀서_ 김태형

     

    안현미, 「개기월식」을 배달하며

     

    남자는 허기가 집니다. 여자도 허기가 집니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지고 봐도봐도 보고 싶습니다. 허나 허기가 가시자 남자는 다른 것을 원합니다. 눈, 코, 입도 다 지웠습니다. 사랑 아닌 것, 그 외의 것을 원합니다. 그러나 여자는 사랑을 있는 그대로 ‘사랑이라고만 말하자’고 합니다. 여자는 슬픕니다. 남자는 떠날 것만 같습니다. 여자는 웁니다. 여자는 웁니다. 여자는 웁니다. 울음의 반은 삼켜지고 반은 밖으로 넘칩니다. 그러나 차차 울음은 다 목구멍 속으로 넘어갑니다. 마침내 남자마저도 다 삼켰습니다. 완성입니다.

     

    모든 사랑은 어긋나지만, 모든 어긋남은 슬프지만, 모든 슬픔이 인생을 망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과 씨를 뱉듯 유쾌한 결론이 바람직합니다.

     

    유쾌한 이별을 노래한 시인데 이 시는 그림자가 왜 이리 길지요? 또 허기가 지지요? 사랑이 그러하니까 그러하겠죠?

     

    문학집배원 장석남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