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재, 「태양의 서쪽」(낭송 김선재)
김선재, 「태양의 서쪽」
이곳에 다다른 햇살은 지상에서 가장 가파른 절벽이다
본 적 없는 태양의 뒤편
그 저녁이 주기를 이루어 저물어갈 때
국경의 여인숙은 불을 켜고
하루를 떠내려온 우리들 행장을 풀고 태양의 적멸을 보네 이곳은 고대 사원에 뚫린 비밀의 구멍 그리하여 나란히 선 우리들 젖은 옷깃을 말리고 소리가 된 적 없는 말들이 흘러가는 동안 멈추어 서서 귀 기울이는 이는 없었네 태양은 수시로 너울을 몰아가고 나는 부신 눈을 자주 비비네
절벽인 햇살, 능선을 베니 차마 꽃이 되지 못한 피멍들 온몸에 피고 나란히 선 우리들 끝내 울지도 못하고
바람이 버리고 간 말과 눈물이 몰락하는 서쪽에 앉아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유배지의 오래된 벽에 기대니
달이 걸어와 이마를 어루만지네
다시 강을 건너 이 변방까지 찾아오는 태양의 동쪽
국경의 옛 여인숙이 불을 끄는 시간
● 시·낭송_ 김선재 – 통영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2006년 《실천문학》에 소설을, 2007년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소설집 『그녀가 보인다』, 시집 『얼룩의 탄생』이 있다.
● 출전_ ☜『얼룩의 탄생』(문학과지성사)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김태형
김선재, 「태양의 서쪽」을 배달하며
우리들의 미래는 서쪽입니다. 서쪽은 늘 가장 신선한 양식입니다. 인류는 죽음을 발견하고부터 인류입니다. 그러므로 서쪽은 가장 오래된 사원이며 아름다운 장엄이며 소리가 되지 않은, 구원의 말입니다.
삶이 막히면 미리 서쪽에 갑니다. 해법이 없을 때 고대(古代)로 향하던 지혜를 알기 때문입니다. 유배의 형식이 되겠지요. 그러나 낭만이기도 합니다. 혁명의 짝이 낭만인 것처럼.
서쪽 국경, 그러니까 유배지의 여인숙을 바라보는 눈이 이 시에는 있습니다. 그 여인숙 창에 불이 켜질 때부터 꺼질 때까지의 시선이 또렷이 있습니다. 그 눈동자가 정작 크고 아름다운 사원이군요.
국경 여인숙의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대고 기침을 하고 싶습니다.
문학집배원 장석남 / 새벽산책 시와 그리움
'시와 憧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이지, 「무지개의 발」(낭송 장이지) (0) | 2013.12.05 |
---|---|
유종인,「먹기러기들」(낭송 유종인) (0) | 2013.11.26 |
기형도, 「집시의 시집」(낭송 최광덕) (0) | 2013.11.12 |
서안나, 「의자」(낭송 서안나) (0) | 2013.11.05 |
이상, 「꽃나무」(낭송 장인호) (0) | 2013.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