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동짓달 / 황진이

cassia 2013. 1. 2.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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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달 / 황진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본명은 진, 기명은 명월. 조선 중종 때 송도의 기생.

 


지난밤에 하얀 눈이 내렸나 보다. 해운대 바다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문학모임에 참석하고 늦게 귀가했다. 늘 환하게 웃던 고명자 시인을 집 근처에 모셔다 드리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삶은 어렵지만 시를 쓸 수 있어 다행이라는 그녀의 말에 감동이 밀려왔다. 동짓달 기나긴 밤, 잠이 들지 않는다.

 

기생 황진이가 부운거사 김경원을 그리워하며 겨울밤에 쓴 시조가 떠오른다. 가부장제가 중심이었던 조선 시대에 자유의 아이콘이었던 그녀는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하얀 눈길을 따라 내게로 걸어온다. 계급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사랑하고 집착하지 않는 바람처럼 살다간 그녀가 그립다. 파격적인 삶을 살려면 탁월한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평범한 일상의 잘나가는 사내들은 모두 사라지지만, 문학 속의 남자는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는다. 문학의 놀라운 힘이다.

 

동짓달이 뜬 밤의 긴 허리를 자르는 그녀의 상상력이 신선하다. 누군가 그리워 뒤척이는 밤, 깊고 깊은 겨울밤, 당신을 그리워하는 연인에게 뜨거운 편지를 쓰기를. 사랑하는 순간은, 아주 잠깐, 불멸의 존재가 된다. / 김혜영·시인

 

출처 / 국제신문 [아침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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