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문태준,「엎드린 개처럼」(낭송 최광덕)

cassia 2016. 6. 21. 03:30

문태준,「엎드린 개처럼」(낭송 최광덕)

 

 

 
문태준,「엎드린 개처럼」


배를 깔고 턱을 땅에 대고 한껏 졸고 있는 한 마리 개처럼
 이 세계의 정오를 지나가요
 나의 꿈은 근심없이 햇빛의 바닥을 기어가요
 목에 쇠사슬이 묶인 줄을 잊고
 쇠사슬도 느슨하게 정오를 지나가요
 원하는 것은 없어요
 백일홍이 핀 것을 내 눈 속에서 보아요
 눈을 반쯤 감아요. 벌레처럼
 나는 정오의 세계를 엎드린 개처럼 지나가요
 이 세계의 바닥이 식기 전에
 나의 꿈이 싸늘히 식기 전에

 

시_ 문태준 – 1970년 김천 출생.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처서(處暑)> 외 9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그늘의 발달』 『먼 곳』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등이 있다.

낭송_ 최광덕 – 배우. ‘만다라의 노래’, ‘맥베드21’ 등에 출연.
출전_ 그늘의 발달 『그늘의 발달』(문학과지성사)
음악_ won's music library 09
애니메이션_ 김은미
프로듀서_ 김태형


문태준, 「엎드린 개처럼」을 배달하며


시 속에서 말하는 ‘세계의 정오’는 지금, 여기이다. 생의 한가운데이다. 

시인은 엎드린 개처럼 생을 지나간다고 했다. 자신을 묶은 쇠사슬도 잊고 원하는 것도 없이 엎드린 개처럼 지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어찌 엎드린 개처럼 지나 갈수가 있을까. 목에 묶인 쇠사슬을 잊을 수가 있을까.

한 평론은 ‘눈 속에서 백일홍이 핀 것을 보고 있기에 비굴하지 않다’고 했지만, 벌레처럼 눈을 반쯤 감고 있지만 나머지 반은 형형하게 뜨고 있기에 차라리 의뭉스러운 정직함이 있다’고 했지만 이 시속의 세계관은 마지막 두 구절에서 확연해진다. 세계의 바닥이 식기 전에, 꿈이 싸늘히 식기 전에...즉 생은 짧고도 짧다. 세계의 바닥과 꿈은 곧 식는다. 그런데 엎드린 개처럼 지나간다?! 그럴 수밖에 없는가?! 아프고 안타깝지만 이것은 바람 속을 해쳐가는 그가 이룩한 하나의 슬픈 포즈이며, 목숨을 가진 인간의 근본 형상일 것이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 별뜨락새벽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