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나희덕,「새떼가 날아간 하늘 끝」(낭송 황혜영)

cassia 2016. 6. 7. 03:07

나희덕,「새떼가 날아간 하늘 끝」(낭송 황혜영)

 

 


나희덕,「새떼가 날아간 하늘 끝」


철새들이 줄을 맞추어 날아가는 것
길을 잃지 않으려 해서가 아닙니다
이미 한몸이어서입니다
티끌 속에 섞여 한 계절 펄럭이다보면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어느새 어깨를 나란히 하여 걷고 있는
저 두 사람
그 말없음의 거리가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새떼가 날아간 하늘 끝
또는 두 사람이 지나간 자리, 그 온기에 젖어
나는 오늘도 두리번거리다 돌아갑니다


몸마다 새겨진 어떤 거리와 속도
새들은 지우지 못할 것입니다


시_ 나희덕 – 196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야생사과』『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산문집 『반통의 물』 등이 있다. 김수영 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2014년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낭송_ 황혜영 – 배우. 연극 ‘타이피스트’ ‘죽기살기’,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하모니’ 등에 출연.
출전_ 그녀에게 『그녀에게』(예경)
음악_ Soap Lovers Guitar
애니메이션_ 박지영
프로듀서_ 김태형


나희덕,「새떼가 날아간 하늘 끝」을 배달하며


풀어헤친 머리가 땅에 닿을락 말락 실려 가는 나무들이 하는 말을 아프게 들을 줄 아는 시인은 그 풍경에서 언어의 도끼에 다쳐 본 둔탁한 상처를  떠올릴 줄 안다. 돼지 머리가 입과 콧구멍에 만 원권 지폐를 물고 있는 것을 향해 “웃어. 웃어봐”하던 것을 출근 길 운전하는 자동차의 룸미러 속에서 자조하듯 떠 올리며 거기에다 자신의 얼굴을 겹쳐 놓을 줄도 안다.

 

철새들이 줄을 맞추어 날아가는 풍경에서 동체대비(同體大悲)를 읽는 시인은  그 사이의 거리와 속도에서 지워지지 않는, 결코 지울 수 없는 시간의 온기(溫氣)를 읽는다. 천지는 나와 한 뿌리, 만물은 나와 한 몸, 아직도 가시지 않은 진도 앞바다의 통곡은 우리의 울음!

 

문학집배원 문정희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 별뜨락새벽산책 詩&憧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