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서효인,「광기의 재개발」(낭송 성경선)

cassia 2016. 5. 18. 03:54

서효인,「광기의 재개발」(낭송 성경선)

 

 

 

서효인,「광기의 재개발」


백 원만 하던 너, 아직도 여기 있구나
모교 앞, 문방구는 이름이 바뀌고
주인 여자도 졸업식마냥 늙었는데
오래된 오락기 위에 먼지가 되어 앉았구나
백 원만 하던 너, 아직도 웃는구나
장마처럼 침을 흘리며 먼지처럼 닦이지 않으며
너를 보는 모교 앞

 

백 원만 하는 너
몰라보는구나 나를
국민 체조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콧물과 함께 흘리던 교문에서
미친년이라고 아무리 놀려도 백 원만 백 원만 했다 넌
기억나니 넌, 고학년 오빠들이 아랫도리에 손을 찌르며
오락하듯 백 원을 넣고 흔들 때도 장마처럼 침을 흘렸다 넌

 

백 원만 하던 너, 아직도 여기에
몇 떼의 구름이 지나가도록 섰구나
촌지처럼 교실은 시끄러운데
아직도 웃는구나 동전은 소리 내며 웃는데
너는 소리도 없이 진짜로 누가 미쳤느냐고
백 원만 백 원만 하며 묻고 있구나


시_ 서효인 – 1981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다. 2006년 《시인세계》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이 있다.

낭송_ 성경선 – 배우. , 등에 출연.
출전_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민음사)
음악_ Stock music / song bird av212 중에서 입니다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김태형


서효인, 「광기의 재개발」을 배달하며


몇 떼의 구름이 지나가도록 아직도 여기에 서있는 빈곤과 차별과 무지의 폭력……. ‘백원 만’이라는 말이 비명처럼 아프다.

 

소외와 타자들을 거침없이 짓밟고 조롱하며 광기어린 재개발은 반복 되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그 조롱과 폭력을 모교 앞 문방구 어디쯤에다 두고 온줄 알았는데 기실 현실 속에서 여전히 장마처럼 침을 흘리기도 하고, 우리들의 오락기구 위에서 닦이지 않는 먼지가 되어 놓여 있기도 하다. 

 

이 시가 수록된 시집이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인데 아시다시피 파르티잔은 프랑스어 파르티(parti)에서 유래된 말로 에스파냐의 게릴라와 함께 우리에게 빨치산으로 친근한 말이다. 빨치산에서 게릴라를 거쳐 핵무기 까지 왔지만 그 사이로 ‘광기의 재개발’이 여러 이름으로 진행 되었지만 무지와 야만은 제대로 개발 된 적이 없다. 아리엘 클레이만의 영화<소년 파르티잔>처럼 우리는 언제 집단과 힘의 지배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문학집배원 문정희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 별뜨락새벽산책 詩&憧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