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황동규, 「빈센트」 (낭송 김병수)

cassia 2016. 5. 3. 03:54

황동규,「빈센트」(낭송 김병수)

 

 

 

황동규, 「빈센트」

 

빈센트 반 고호처럼
 계속 물감 바르라 보채는 캔버스들을 벗어나
 어디 숨 좀 쉴 공기를 찾아 피스톨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
 까마귀 줄지어 나르는 누런 밀밭이 아직 있을까

 

가며가며 금속피로처럼 쌓이는 마음의 안개 잠시 밀어내고
 과일과 과자 꾸러미를 사 들고
 뵈지 않게 숨어서 우는 아이들을 찾아가
‘눈물 그만, 여기 맛있는 사과와 과자가 있네!’ 달래
 울음을 그치게 하고
 파워레인저 로봇들을 하나씩 손에 쥐어주고
‘이제 나는 가도 되지?’ 말하고
 넌지시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눈 한번 딱 감고 걸어
 사방에 아무도 없이 밑불들만 간지럼 타듯 타는 곳으로
 나갈 수 있을까?


시_ 황동규 –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5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한 이래 『어떤 개인 날』 『풍장』 『외계인』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꽃의 고요』 『사는 기쁨』 등의 시집을 펴냈다.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낭송_ 김병수 – 배우. 연극 ‘챠이카’ ‘내일은 참피온’ 등에 출연.
출전_ 겨울밤 0시 5분 『겨울밤 0시 5분』(문학과지성)
음악_ soundidea/solo instrument 중에서
애니메이션_ 송승리
프로듀서_ 김태형

 

황동규,「빈센트」를 배달하며


보이지 않게 숨어서 우는 아이들의 울음을 듣지 못하고 계속 물감 바르라 보채는 캔버스! 그 속에서 미친 듯이 붓질을 계속하는 것이 오늘의 자화상이다.

 

‘눈물 그만, 여기 맛있는 사과와 과자가 있네’ 이 구절에서 숨통이 탁 트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과일과 과자 꾸러미를 들고 아이를 찾아가 울음을 그치게 하고 ‘이제 나는 가도 되지?’라고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가는 시인과 아이는 삶과 죽음의 완성이라는 구도 속에 동일인으로 놓여 있어도 좋다.

 

잠깐, 눈 돌릴 사이, 몇 섬광이 지나갔지? 생은 그런 것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어느 새 사방에 아무도 없이 밑불들만 간지럼 타듯 타는 곳으로 나갈 수 있을까?

 

흔들리는 노란 밀밭 사이를 배회하는 광기와 사랑의 손이 보이는 듯하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 별뜨락새벽산책 詩&憧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