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憧憬

차주일,「45 나누기 21」(낭송 정인겸)

cassia 2016. 4. 12. 04:52

차주일,「45 나누기 21」(낭송 정인겸)

 

 


차주일,「45 나누기 21」


친구 결혼식에 나눗셈 하러 갔다
 늦은 나이에 어린 아내를 맞는 게 면구스러운 친구는
 말도 통하지 않는 아내에게
 알아볼 수 없는 수화와 몸짓으로
 내가 불알친구임을 말해주었다
 신부 볼에 핀 수줍음이 몽고반점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행진에
 평소보다 많은 박수를 쳐주었지만
 도무지 사그라지지 않는 심사가 무한소수처럼 남았다
 언젠가 텔레비전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에서
 동남아 한 산간마을 풍경을 본적 있다
 우리말과 비슷하게 발음되고 뜻이 같은 몇 단어 중
 엄마와 우리 그리고 구들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지금 신부가 마음으로 오물거리는 엄마라는 단어가
 자꾸만 그의 입술에서 도드라지는 것이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저 심사와
 그 속내를 볼 수밖에 없는 내 눈치가
 결코 나누어지지 않는 유전형질 같은 우리일 것이다
 썰렁한 신부측 하객석에 홀로 앉는다
 몽고반점이 구들처럼 따뜻해져 온다


시_ 차주일 – 1961년 전북 무주에서 태어났다. 200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냄새의 소유권』이 있다.
낭송_ 정인겸 – 배우. 영화 ‘암살’ 등에 출연.
출전_ 냄새의 소유권 『냄새의 소유권』(천년의 시작)
음악_ won's music library 03
애니메이션_ 김은미
프로듀서_ 김태형


차주일 , 「45 나누기 21」을 배달하며


최근 세계화와 국제화, 국제결혼의 증가로 다문화 가족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현상의 일부로 떠오르고 있다. 진위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동안 순혈주의와 단일 민족을 강조하고 살아온 터라 이렇듯 이질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문제는 몇 가지 이견을 대두시킬 때도 있다. 

늙은 신랑, 어린 신부의 결혼식, 45 나누기 21, 결혼식과 나눗셈, 몽고반점, 혀 속을 맴도는 엄마, 우리, 구들에 이르는 매우 긴 사회 문화적 행로를 펼쳐 보이는 시이다.

‘저 심사’와 ‘그 속내’ ‘내 눈치’ 가 유전형질 같은 우리의 몽고반점, 따스한 구들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간다. 이 시인의 시적 앵글이 근래에 이르러 인류 최초의 동굴 암각화, 에티오피아 소녀, 아프리카 전도 등 종횡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세상의 타자들에게로 깊게 확장되어가는 것을 주목해 본다.

 

문학집배원 문정희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 별뜨락새벽산책 詩&憧憬